김학천의 世上萬事

치과의

  • 고디바와 '양복쟁이 탐'

    그리이스 신화에 '시지프스'이야기가 나온다. 호머는 그가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었다고 하지만 신들은 그가 엿보기를 좋아하고 입이 싸서 신들이 하는 일들을 폭로한다고 미워했다. 하루는 제우스가 독수리로 변해서 요정 아이기나를 납치해 간 것을 몰래 훔쳐보고는 그의 아버지에게 일러바쳤다. 이 때문에 그는 완전히 제우스 눈 밖에 나서 저승사자 신에게 그를 잡아 처리하라 명령했다. 허지만 이를 미리 알아챈 그가 오히려 저승사자 신을 묶어 가두어 죽이자 저승으로 가는 사람들이 없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일이 이쯤 되자 몹시 화가 난 죽음의 왕 하데스가 시지프스에게 벌을 내렸다. 커다란 바위를 높은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려놓으라고 했다. 있는 힘을 다해 꼭대기에 당도하면 돌은 반대쪽으로 굴러 떨어진다. 다시 밀어 올리면 또 굴러 떨어지고. 영원히 바위와 씨름을 해야만 하는 참혹한 형벌이었다. 헌데 이런 엿보기의 형벌이 인간세계에서도 일어났다. 옛날 영국의 코벤트리 마을에 심술 고약한 영주가 있어서 주민에게 가혹한 세금을 부과하는 등 폭정을 일삼자 부인이 앞장서서 제발 세금을 적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귀찮아진 남편은 빈말로 부인이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면 그러겠노라고 하였다. 차마 정숙한 부인이 그렇게는 못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정말로 알몸으로 마을을 돌기로 했다. 이 사실이 온 마을에 퍼지자 마을사람 모두는 그녀의 사랑과 용기에 감복한 나머지 그 날만은 모두 창문을 닫고 내다보지 않기로 하였다. 헌데 양복쟁이 탐이 몰래 커튼 사이로 부인의 알몸을 엿보려 하다가 그만 눈이 멀어 버렸다. 이때부터 '피핑 탐'은 몰래 엿보는 이를 빈정거리는 말이 되었다. 근자에는 전 세계가 불법도청으로 온통 시끄럽다. '피핑 시지프스'당국들이 된 것이다. 데이비드 브린은 책 '투명사회'에서 정보사회의 부작용으로 모든 것이 너무 들여다보이는, 그래서 프라이버시가 없는 '알몸사회'가 되었다고 고발했다. 투명사회라는 제목만으로는 얼핏 맑은 사회를 연상시키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다. 우리가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듯 피의자를 심문하고 있는 방을 한 쪽에서만 볼 수 있는 일방통행 투시장면과 같은 바로 그런 걸 말한다. 남의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심리나 탐내는 욕심이 바로 범죄의 시작이다. 해서 십계명도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했거늘. 이는 우리가 남의 것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정보매체가 우리사회와 우리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즘에는 더욱 그러할 뿐 아니라 이를 책임 있게 사용할 의무도 뒤따른다는 말이다. 진실은 무섭도록 정직하여 간사함을 허용치 않아 사필귀정으로 돌아간다 해도 결국 피해자가 겪어야하는 치명적 고통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기고 용서가 모든 것을 다 잊도록 해 주진 못하기 때문이다. 남의 알몸을 훔쳐보려했던 탐은 눈을 잃었다. 그러나 알몸도 마다했던 영주의 아내 고디바는 오늘날 초코렛의 이름으로 남아 만인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 진시황과 김정은

    2000여 년 전 중국 진나라 상인 중에 여불위라는 야망이 큰 대부호가 있었다. 어느 날 정부 고위관리들의 모임에 갔다. 헌데 제 아무리 엄청난 재력가라 해도 장사꾼이라는 이유로 그들로부터 푸대접을 받고는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재물로는 실질적 권력을 탐닉할 수 없음을 깨달은 그는 자신만의 왕을 만들어 권세를 잡을 엄청난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는 인근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가 있는 자초 왕자를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비록 그의 서열이 별 볼일 없을 정도로 한참 밀리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여불위는 그를 점찍고 전 재산을 건 말하자면 일생 최대의 도박을 한다. 본국의 큰 황후에게 인심을 사는데 재물을 아끼지 않고 로비를 하는 등 치밀한 공작을 이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천운의 기회는 오고 드디어 자초왕자는 본국에 돌아와 세자로 책봉되기에 이른다. 그런 와중에 일찍이 자초왕자에게 바친 자신의 애첩으로부터 아들이 태어나는데 이 아이는 실상 여부위의 씨앗이었다. 이 아이가 후에 중국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다. 진시황은 '호(胡)를 조심하라'는 누군가의 점궤를 믿고 변방의 오랑캐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는 위업을 이루었으나 정작 그 호(胡)의 의미는 오랑캐 시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호해(胡亥)왕자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형가라는 불세출 검객이 진시황을 암살하려 할 때 곁에 있던 한 시녀의 기지로 구사일생한 진시황은 그녀를 후궁으로 삼아 태어난 아이가 호해였다. 헌데 진시황이 지방순시에서 돌아오다 객사하자 이 호해가 환관 조고의 모략에 빠져 황제에 올랐다가 결국엔 나라를 말아먹게 되니 그 점궤가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는가 보다. 암튼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하고 나서 나라이름을 진(秦)이라 하고는 고대 중국 시조인 3황5제의 두 글자를 모두 합쳐 '황제'라 했으니 이로써 '진나라에서 처음으로 황제가 시작한다'하여 진시황이라 불렀다. 자신을 천하제일의 위치로 격상하고 그 누구보다도 높다는 것을 뽐내고 싶었던 거다. 그것도 모자라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짐'이라하고 그 어느 누구도 못쓰게 하였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도 이를 본떴는지 '태양왕'도 모자라 '짐이 곧 국가다'라며 위세를 떨었다. 최근 북한에선 당 대회가 열려 자칭 대관식을 한 김정은도 자신의 직책을 새로 만들었다. 할아버지는 영원한 주석으로 하고 아버지를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하고는 이 단어를 아무도 못쓰게 영구 결번으로 만들더니 자신은 당 위원장이라 했다. 세계 어디에도 이런 직책은 없다. 위원회 위원장이면 몰라도 그냥 당 위원장이란 앞뒤가 맞지 않는 희한한 이름의 완장을 찼다. 총서기나 서기장은 중국과 러시아의 것이니 만큼 주체를 내세운 그가 찾을 수 있는 마땅한 단어가 없었던 게다. 더 꼴불견은 그의 연설이 끝나자 12번의 '만세'소리가 터졌다고 한다. 만세 3창도 아니고 만세 12창이라니 아무리 신격화라 해도 좀 심하지 않나? 그러니 김정은은 이제 더 나아가 자신을 무엇이라 부르고 싶을까 궁금해진다. 누구처럼 '짐이 곧 공화국이다'라고 하고 싶겠지만 이 또한 자존심 때문에 어쩌면 또 다른 단어를 만들어 낼는지도 모를 일. 갈수록 태산. 점입가경이다.


  • 흙수저들의 반란

    만년 꼴찌 후보로 소문났던 잉글랜드 프로축구팀의 기적적인 감동 스토리에 전 세계 축구팬이 흥분하고 있다. '흙수저'클럽 레스터 시티가 창단 132년 만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첫 우승의 감격을 누리며 거짓말 같은 동화를 만들어낸 일이다. 인구 30 만여 명의 조그마한 소도시 레스터 시티 지역 연고팀으로 창단 이래 하위에서만 전전했던 팀이었다. 4년 동안 단 한 차례도 1군에 기용되지 못해 퇴출된 선수나 공장에서 일하면서 1경기당 불과 40 여 달러를 받고 뛰던 선수 등 주전멤버 11명 몸값이 유명 수퍼스타 한 명의 몸값에도 못 미쳤다. 게다가 지난 해 이탈리아 출신 라니에리 감독이 이 팀의 사령탑에 선임되자 '우승과 거리가 먼 감독'이라든가 '루저'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스포츠 도박사들은 우승 확률을 5000 대 1 로 보았다. 우승한다는 게 거의 로또 당첨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헌데 그런 레스터 시티가 맨시티, 아스날, 맨유, 리버풀, 첼시 등 '빅5'나 토트넘 핫스퍼 같은 신흥 강호를 넘어 우승컵을 들어 올리자 '꼴찌 중 꼴찌의 반란'이라고 난리다. 이런 레스터 시티의 기적 같은 우승이 하도 믿기지 않다 보니 신비로운 이야기들까지 퍼졌다. 그 중 하나가 1485년 장미전쟁의 와중에서 전사한 리처드 3세 덕분이란 얘기다. 리처드 3세는 영국 요크 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우리에겐 셰익스피어의 작품 등에서 형과 조카를 살해한 포악한 왕 또는 꼽추왕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1485년 장미전쟁의 마지막 전투에서 패하며 전사했다. 그 후 레스터 시 수도원에 묻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수도원이 파괴되면서 무덤의 행방을 530년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 2012년 레스터 시의 한 주차장에서 유골이 우연히 발견됐는데 DNA 검사를 해보니 리처드 3세였다.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룬 후 레스터 성당에 묻고 리처드 3세의 후손인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추모시를 낭송했다. 그러자 이 때부터 우연인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레스터 시티가 7승1무1패의 성적으로 1부 리그에 올랐고 올 시즌 우승을 확정지을 때까지 45전29승의 경이로운 성적을 거뒀다. 사람들은 구천을 헤매던 리처드 3세의 영혼이 안식처를 찾아준 레스터 시민들을 위해 우승컵을 안겨줬다고 이야기 한다. 이를 두고 LA타임즈가 "530년 만에 잠든 리처드 3세가 국왕의 기운을 전해줬다"고 하는 등 많은 언론과 유명인사의 극찬이 쏟아졌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레스터 시티 성공 신화에서 땀과 눈물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힘든 노동을 하면서도 공을 차고, 잠을 자는 것 외에 하는 일이 없었다던 선수에게 감독이 슈팅훈련 금지령까지 내릴 정도였다니 눈물겨운 흙수저들의 반란 그리고 루저의 역전이 어찌 그냥 일어났다고 할 수 있을까? 승리 후 라니에리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모든 이들에게 말하고 싶은 바는 축구에서건, 삶의 모든 영역에서건 스스로를 믿고, 시도해보라는 것"이라고.


  • 팥죽 한 그릇과 100세 인생

    구약 성서 창세기 25장에 보면 야곱이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을 주고 그의 장자권을 가로채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형은 에서이고 동생은 야곱이었다. 남성적이고 사냥을 좋아하는 마초 맨 형 에서에 비해 동생 야곱은 여성적이고 엄마 치마폭에 매달려서 사는 마마보이였다. 그런 야곱이 엄마와 공모하여 형을 밀어내고 아버지 이삭으로 부터 장자의 권리와 축복을 형으로 빼앗는 음모를 꾸민다. 어느 날 에서는 사냥에서 지치고 너무 허기져 돌아왔는데 야곱은 미리 끓여놓은 팥죽 한 그릇을 주는 댓가로 장자권을 넘겨 달라고 한다. 에서는 배고픈 나머지 아무 생각 없이 그러라고 하고는 팥죽을 먹는다. 그 후 야곱은 형이 없는 틈을 타 에서처럼 꾸며 앞을 잘 못 보는 아버지에게서 형에게 돌아갈 모든 축복을 가로챈다. 그리고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하여 거기서 라반의 작은 딸 라헬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외삼촌한테 속아 21년이란 긴 세월동안을 일해주고 나서야 언니 레아와 함께 동생 라헬 모두를 아내로 얻은 후 그 동안 불린 많은 재산을 갖고 형에게로 돌아와 용서를 받는다. 40여 년 전인가. 영화 '왕과 나'가 있었다. 과학을 존중하고 외국의 선진문물을 받아드리기 위해 애쓰는 샴국의 왕과 영국으로부터 초빙되어 온 왕가의 영어 가정교사와의 이야기다. 어느 한 새벽에 왕은 여선생을 부른다. 그리곤 성서를 들이대곤 모세는 참으로 어리석고 비과학적인 인물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어떻게 이 세상을 엿새 만에 창조했다고 믿고 성서를 그렇게 기록했냐는 것이었다. 선생은 왕께 대답한다."폐하, 성서는 과학자의 마음으로 써진 책이 아니라 신앙의 눈으로 쓰인 책입니다." 성서는 과학이나 역사의 시각으로 써진 것이 아니라 신앙의 면으로 쓰여 진 것이므로 우리의 제한된 지식으로 해석을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신앙의 책을 분석하기는 어렵겠지만 조지아 의과대학의 성서를 연구하는 한 내과교수가 성서의 많은 인물에 대해 진단과 평가를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에서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분석은 당시 장자권은 생명만큼이나 중요 한 것이었는데 에서는 어찌하여 팥죽 한 그릇에 그리 쉽게도 그의 권리를 포기하였을까 하는 의구심에서 출발한다. 에서는 '내가 죽는 마당에'라며 야곱으로부터 팥죽 한 그릇을 얻어 마시자마자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죽을 듯이 쓰러질 지경에 이른 그가 먹은 당분 섭취에 빠른 회복력을 보였다는 점 외에 다른 여러 구절들을 종합한 결과 에서는 저혈당 당뇨병이었을 거라고 진단했다. 인간의 현대적 질병도 이미 오래 전 시작됐음이다. 성서에 의하면 노아의 홍수 이전에 인간은 상당한 장수를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추악한 탐욕 때문에 모든 하늘의 창이 열려 물이 쏟아지고 삼백여 일의 대홍수가 나서 지상의 모든 것은 멸하여지는 벌을 받고 그 때 부터 인간의 수명은 120살로 한정 지워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직도 우리는 잘못된 생활버릇과 그릇된 섭생관습으로 그나마도 다 누리지를 못하고 있음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는지.


  •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로얄 살루트'하면 애주가들은 금방 위스키를 떠올릴 것이다. 특히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스카치위스키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어렸을 때 21년 후에 있을 대관식을 기념하기 위하여 미리 만들어 두었다가 21발의 예포를 울리고 사용하였다하여 '로얄 살루트'라고 이름 붙였진 위스키다. 대관식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치러지는 데 켄터베리 대주교의 시작기도 후 선서를 하고 의자에 앉으면 성유를 바르고 보검과 십자가가 붙은 왕홀을 왼손에 받고 비둘기 장식이 있는 왕장을 오른손에 받는다. 1952년 즉위해 올해로 90세가 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오는 6월 12일 대규모 파티가 열린다는 보도가 화제다. 이로써 여왕은 영국을 변두리 나라에서 최강국가로의 기틀을 마련한 고조모 빅토리아 여왕에 이어 최장기 재위 군주가 됐다. 애당초 여왕은 아버지가 윈저왕가의 차남이어서 왕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큰 아버지 에드워드 8세가 미국여성 심프슨과 결혼한다며 왕위를 포기하면서 동생 앨버트가 조지 6세로 왕위를 계승했지만 얼마 후 타계하는 바람에 해외순방 중이던 엘리자베스 공주가 귀국해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하게 됐다. 아버지 조지 6세는 말더듬 증으로 대인기피증이 있었으나 이를 어렵게 극복하고 감동적인 대 국민연설을 해냄으로써 국민 정신력을 단합시켜 2차 대전 당시 위기의 영국을 구해낼 수 있었던 모습은 영화 '킹스 스피치'에서 잘 묘사돼 있다. 헌데 대관식 의자는 운명의 돌이라 불리는 대관석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일명 야곱의 베개라고도 한다. 야곱이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 오르내리는 사다리 꿈을 꾼 연유로 하늘과 땅을 잇는 신성의 의미가 부여된 것은 왕은 하늘이 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옛날 우리나라 임금들은 즉위식 때 '면류관'을 썼다. 관의 옆면에 붙어있는 '면'은 귀를 막기 위한 것이고 앞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류'는 눈을 가리기 위한 것이라 한다. 임금은 가까이서 보다는 들리지 않는 먼 곳의 깊은 소리까지도 듣고 보이지 않는 곳의 어두운 아픔까지도 보아야 한다는 의미이겠다. 그런 면에서 여왕은 이를 손수 실천하는 지도자였다. 여왕 통치 동안 여러 연방 국가들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거나 왕실 안에서도 불미스런 일들이 발생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엄청난 시련과 불행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여왕을 향한 영국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은 가히 절대적이다. 그것은 스물다섯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후 국민 위에 군림하는 여왕이 아니라 백성과 함께하며 조용히 봉사하는 통치 철학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고조모 빅토리아 여왕의 치세가 이른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는 막강한 대영제국의 전성기였다면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의 흥망을 모두 겪은 시대의 통치자였으며 '낮은 자세로 봉사하는'자세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군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영국 국가는 이렇게 노래한다. '신이시여 우리의 자비로운 여왕을 구원하소서!' 여왕의 건강과 장수를 빈다.


  • '천국 전화'

    어느 사람이 화장실에 들어가 막 앉았는데 바로 옆 칸의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누군지 모르지만 얼떨결에 '네, 안녕하세요.'하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요새 어떻게 지내요?'하며 되물어온다. 좀 당혹스럽고 난처하다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저 그래요. 헌데 그쪽은요.'했다. 그랬더니 저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전화 끊어야겠어요. 옆에 어느 멍청이가 말끝마다 끼어드네요. 다시 걸죠.' 셀 폰이 발달한 요즈음 일어난 해프닝이다. 셀 폰은 이제 일상생활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품 중에서도 아주 중요한 휴대품이 되었다. 그러나 길을 건너가면서도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어 운전자들을 불안하게 하는가하면 가족과의 식사 중에도 들여다보는 아이들도 있고 심지어 데이트 하는 연인들도 식당에 마주 앉으면 텍스트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하니 이건 단순히 문명의 이기를 향유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어디 그뿐인가? 담화하며 식사를 즐기는 식당을 비롯하여 공공장소에서도 주위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마구 큰 소리로 떠드는 몰염치한 사람들을 만나면 모처럼의 기분을 망쳐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심지어 극장이나 세미나 혹은 교회에서도 울려대는 벨소리들은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기도 한다. 허나 이것 말고도 또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것은 넘쳐나는 음성이나 문자 정크메일이다. 음성, 문자메일은 기계와의 대화로 인간미를 상실해 가는 아쉬움이 있긴 해도 여러 가지 많은 양의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훌륭한 심부름꾼일 뿐만 아니라 메일에 남겨진 메시지를 통해 나중에 시간 날 때 처리 할 수 있다는 점 등의 편리함이 있다. 그럼에도 쏟아져 들어오는 원치 않는 메시지나 상업적인 메일들은 우리를 극도로 피곤하게 하고 짜증을 나게 한다. 이 모든 것들은 공해 내지는 폭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어쩌랴. 바쁜 현대 사회 생활 속에서 전자매체는 필요불가결한 하나의 수단이 되었으니 이를 철저히 외면 할 수도 없게 됐다. 이 지경이니 이젠 우리의 삶을 넘어 하늘에 까지도 전염됐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게 아니겠나. 하늘에 전화를 걸면 '천국에 전화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영어로는 1번, 스패니쉬로는 2번, 그 외 언어는 3번을 누르세요.'라는 음성메시지가 나온단다. 이어 '감사는 1번, 불만은 2번, 질문이나 그 외의 것은 3번을 누르세요.'한단다. 그리고는 '지금은 모든 천사들과 성인들이 다른 죄인들을 돕느라 바쁩니다. 기다려 주시면 받은 순서대로 답해드립니다. 만일 하느님께 용무가 있으면 1번, 예수님께는 2번, 성령께는 3번을 누르세요. 천국에서 사람을 찾으려면 5번과 그의 소셜 시큐리티 번호를 누른 후 #를 누르세요. 없다는 신호가 나면 끊고 666번 (지옥)을 누르세요. 그리고 천국에 예약하려면 '5646(요한)'을 누르고 316 (3장16절)번호를 입력하세요. 끝으로 이곳 업무 시간 외에 비상도움이 필요하면 각 구역의 사제나 목사에게 연락하세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천국 전화번호는 66-3927과 73-4627입니다.'(개신교성서는 구약 39권과 신약27권으로 모두 66권이고 가톨릭은 구약 7권이 더 많은 73권이다.) 정말 이럴지 누가 알랴!


  • '워싱턴 닷컴(DC) 만세!'

    미국이 독립하고 얼마 안 되어서 나라이름을 무엇으로 해야 할까 하는 문제가 생겼다. 한 의원이 아이디어를 냈다. 먼 동방의 나라 조선에 가면 세종대왕이라는 분이 글을 만드는 데 천재라고 하니 자문을 구해 보자고 했다. 사절을 만난 세종은 '아무렇게나 해라'고 하셨다. 그래서 '아메리카'가 되었다. 미국 윗동네에 사는 사람들도 아쉽다하고 사신을 보냈더니 대왕께서 이르시길 '너흰 가나다순으로 해라'하시거늘 '카나다'가 됐다는 얘기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우스갯소리지만 미국만이 아메리카는 아니다. 멕시코에 가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으면 당연히 아메리칸 이라고 한다. 북미, 중미, 남미, 모두 아메리칸 임엔 틀림이 없다. 우리가 사는 이곳을 아메리카라고도 하지만 엄밀히 US아메리카임을 모두 안다. 그러니 모든 아메리카 대륙인들의 기분이 몹시 언짢을 터다. 그럼에도 미국은 마치 자신들만의 점유물인양 아메리카라고 한다. 건국초기에 콜럼비아로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긴 하지만 성사되지 않았고 결국 남미의 콜롬비아가 생기면서 그 잔여만 남는 결과가 되었다는데. 어쨌거나 아직도 미련이 많이 남아 그 이름 여기저기 자취를 남겼으니 가장 유명한 것이 아무래도 워싱턴 DC가 아니겠는가. DC는 '컬럼비아 자치구'란 뜻인데 그건 장학퀴즈 식 정답이고 사실은 200여 년 후에 IT산업으로 세계를 휘어잡을 Dot Com이 아니었던가 싶다. '워싱턴 닷컴(DC)!' 다른 나라들은 모두 웹주소 뒤에 각자나라이름을 붙이게 하고는 자기네만 깔끔하게 .com으로 처리하고 그 거드름 피는 모습이란 얄밉기도 하지만 부럽기도 하다. 한마디로 미국은 이미 그 오래 전에 세계를 제패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는지 아니면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수도이름 하나는 잘 지었다. 세계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초강국 미국이 마음속 깊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이 있으니 그건 역사적 문화적 전설의 고향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신화의 결여. 세계의 모든 나라에는 나름대로의 이러쿵 저러쿵 신화가 있다. 이는 조상전래의 공동유산으로 한 집단을 묶어주는 접착제이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꿰뚫어 연결해주는 고리라 말할 수 있는데 미국은 이러한 신화가 없다. 유구한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가? 미국은 조부들로부터 시작해 오늘까지도 영웅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영토를 넓혀가는 과정에서 토착민 부족을 섬멸하는 잔혹한 정복도 개척과 구호의 이름으로 전개되는 양면성의 틀을 가진다. 그러고 보니 잔혹성(Devil)과 인류애(Christianity)의 두 가지 의미가 바로 DC인 셈이다. 아무튼 이제 세계의 중심에 서있는 미국은 바로 워싱턴DC에서 잔혹한 전쟁(D)과 구호(C)로 모든 나라에 큰 형님 역할에 바쁜 한편 Dot Com 으로도 글로벌을 좌지우지하고 있으니 건국조부들의 비전이든 야망은 아직도 진행형인 셈인데… 이제 더 나아가 앞으론 디지털(D)과 모든 것을 하나로 아우르는 통섭(C)의 시대로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워싱턴 Dot Com 만세라고 해야 하나?


  • 가시나무새

    지금부터 100여 년 전 로버트 스트라우드라는 사람이 살인죄로 연방교도소에 수감되었다. 한 바텐더가 창녀에게 화대를 지불하지 않은 것이 시비가 되어 그를 바텐더를 살해한 것이었다. 그러다 그는 사소한 다툼으로 동료죄수를 칼로 찌른 일을 저질러 형량이 연장되어 있던 중에 또 다시 많은 죄수들이 보는 앞에서 간수를 살해하는 사건으로 사형언도를 받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사형을 앞둔 아들을 구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여 간신히 윌슨 대통령으로부터 사면을 얻어내어 보석 없는 종신형으로 감형시켰다. 그 대신 그는 평생 독방으로 살아가는 신세가 된다.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혼자서만 지내야하는 정말로 고독한 하루하루를 지내던 어느 날 감옥소 뒤뜰에서 상처입고 비에 떨고 있는 작은 카나리아 새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자기 방으로 데려다 키우며 벗으로 삼는다. 이것을 시작으로 그는 30여 년을 외부와 차단 된 채 감옥소에서 홀로 지내는 동안 300여 마리의 새를 키우면서 새에 대한 전문가가 되었고 책까지 저술하였는데 학계의 참고 자료가 될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러나 새를 키우는데 필요했던 장비들을 이용하여 몰래 술을 주조하는 증류기를 만든 것이 발각되어 악명 높은 고도 알카트라즈로 이송되어 다시 17년의 세월을 보내다가 그 곳 의무실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가 평생을 같이 했던 카나리아는 가금류 중에서 아름다운 울음소리가 마치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 같다고 하여 인간에게 가장 귀여움을 받아 선호되는 애완용 새이다. 그러나 이 보다 더 노래를 가장 잘해서 천상까지 감동케 하는 슬픈 사연의 새가 있다. 가시나무 새다. 이 새는 태어나 자신의 둥우리를 떠나는 순간부터 평생을 쉬지 않고 가시나무를 찾아 날아 다닌다. 그리고 그 나무를 발견하면 가장 길고 가장 날카로운 높은 가지 끝에 앉아 자신의 가슴 깊이 찔러 넣으면서 느끼는 아픔을 노래한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하는 이 순간에는 온 땅이 숨을 죽이고 이 새의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이 노래는 마침내 천상에까지 닿으면 창조주도 들으시고 미소를 지으신다고 한다. 그리고 이 전설은 '최상의 것은 가장 큰 고통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인간 가시나무 새도 있다. 아름다운 최고의 목소리를 얻기 위한 희생의 대가로 남성을 포기해야 했던 카스트라토 들이다. 예리하고 부드러운 여성의 높은 소리와 씩씩하고 강한 면의 남성의 소리 두 가지를 동시에 다 갖는 넓은 음역을 쓰기 위해 변성기가 되기 전 소년 때 거세를 하는 인간 가시나무 새인 셈이다. 한국영화 서편제에서도 한이 서린 좋은 소리를 얻기 위해 약을 먹여 딸의 눈을 멀게 하는 아버지에게서 희생을 통해 최상을 구하기 위해 비정함도 마다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소리만큼이나 더욱 소중한 것이 말이다. 소설 '가시나무 새'에서 신부는 말한다. "말을 절제해야 합니다. 말하기 전에는 우리가 말을 지배하지만 일단 뱉어지면 그 말이 당신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라고.


  • 우주에서 피어난 '백일홍'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언젠가는 시든다는 말이지만 주로 권력의 무상함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십일홍을 넘어 피는 꽃이 있다. 백일홍이다. 옛날 어떤 바닷가 마을에는 머리가 셋 달린 이무기가 나타나 이 동네 처녀들을 제물로 바치게 해 잡아먹었다. 그러던 어느 해 한 처녀의 차례가 되어 모두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청년 한 사람이 나타나 자신이 이무기를 처치하겠다고 자원하였다. 처녀로 가장하여 기다리던 청년은 이무기가 나타나자 칼로 쳤으나 이무기는 목 하나만 잘린 채 도망갔다. 처녀가 보은의 뜻으로 혼인을 청하자 청년은 여의주를 찾아 나선길이니100일만 기다려 달라고 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이무기와 싸워 이기면 흰 깃발을 달고 올 것이고 지면 붉은 깃발을 달고 오겠다고 했다. 그 뒤 처녀는 100일이 되기를 기다리며 높은 산에 올라 바다를 지켜보았다. 이윽고 수평선 위에 청년이 탄 배가 나타났는데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처녀는 절망한 나머지 자결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사실은 청년이 다시 이무기와 싸워 그 피가 흰 깃발을 붉게 물들였던 것이다. 그 뒤 처녀의 무덤에서 이름 모를 꽃이 피어났는데 처녀의 넋이 꽃이 되어 100일을 피었다 하여 백일홍이라 불렀다 한다. 헌데 이 백일홍 한 송이가 우주 공간에서 피어났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미국 우주비행사들이 최초로 꽃을 피우는 데 성공한 것이다. NASA는 궁극적으로 인류가 더 먼 우주로 진출하는데 대비하기 위해서 우주에서 식물이 어떻게 자라는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우선 일차적으로 키우기 쉬운 상추를 수확하는데 성공한 다음 단계로 화초에 도전했다. 실험팀은 상추와 달리 환경의 변화와 빛의 특성에 매우 민감하고 발육 기간도 훨씬 길어 재배하기에 몹시 까다롭고 어려운 백일홍을 골랐다는데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이제 백일홍이 피었다는 것은 토마토도 재배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으로 무중력 우주에서의 식물 재배에 중대한 전기가 된 것이라 한다. 사철 내내 푸른 것이 소나무 잎이라면 백일 내내 빨갛게 피는 선경의 꽃이라고 찬사를 받는 백일홍은 '자극에 민감한 식물'로도 알려졌다. 해서 '손가락으로 긁으면 간지러운 것을 참지 못하고 움직인다'고 해서 '파양화(?痒花)'라는 별명도 얻었다는데 이처럼 까다롭고 별난 성질의 백일홍이 우주실험의 안성맞춤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지난해 개봉해 많은 인기를 얻은 영화 '마션'(화성인)이 있었다. 화성 탐사 중 고립된 한 우주인을 구하기 위해 펼쳐지는 구출작전을 그린 공상 과학 영화다. 특히 척박한 화성 기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자를 심고, 그 감자가 하얀 꽃을 피우는 장면은 보는 이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마션'의 주인공처럼 우주에서 식물을 재배하는 일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면서 이제 우주에서도 자체 재배한 식물로 자급자족하며 살아갈 날도 그리 멀지만은 않아 보인다.


  • '찹 수이' 와 '비빔밥'

    중국인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14억 인구, 만리장성, 하늘을 나르고 장풍을 하는 무협지국? 중국은 모든 면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웅장한 스케일 일 테지만 아무래도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건 요리다. 중국인에겐 땅에서는 네발 달린 것이라면 책상 빼고, 하늘을 나는 것 중에선 비행기 빼고 모두 요리감이라 하지 않던가! 그런 중국요리에서 특별한 것은 Wok이다. 깊게 푹 파인 이 Wok에 뭉툭하고 짧고 두툼한 칼로 토막 낸 덩어리들을 던져 넣고는 불을 마술처럼 다스려 야채와 소스들을 넣고 볶아대거나 튀긴다. 그래서 중국요리점을 'Wok'이라 하지만 '챠오 챠오(chow-chow)'라고도 부른다. 볶는다는 뜻이다. 중국요리는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각 나라마다 그 지역에 맞게 변화해서 더 이상 중국요리인지 그 나라의 전통요리인지 모를 정도다. 뉴올리언스에는 케이준 중국요리가, 이탈리아에서는 젤라토 요리가, 프랑스에서는 개구리뒷다리 요리가, 브라질에서는 쿵 푸드가 모두 그런 것들이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국인이 즐겨 찾는 요리 중에는 중국요리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상당수다. 찹 수이, 초장군, Egg Foo Yong 등 무수히 많다. 허지만 이런 요리가 미국에서 자리 잡히기까지엔 중국인들의 엄청난 많은 시간의 시련과 노력이 요구되었다. 미국이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이긴 후 골드러시가 이루어지면서 들어 온 중국인들은 당시 미국인들에게 그저 미천하고 보잘 것 없는 노동자들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해서 미국인들은 그들에게도 훌륭한 문명의 발생지 민족답게 요리 또한 천하일품의 진기한 최고급의 화려한 상이 즐비하다는 생각조차 못했을 거다. 더구나 당시는 반 중국인 감정인 배화사상이 팽배해 있었고 심지어 중국인은 쥐를 잡아먹는다는 이야기까지 있었으니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리가 있었겠나. 그렇게 천대받고 멸시받던 중국인들은 현지인의 입맛에 맞게끔 요리를 바꾸는 기술을 개발해 내는데 무던히 주력함으로 서서히 그들의 음식문화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헌데 흥미로운 것은 본래 중국음식을 미국인 입맛에 맞게 변용된 것도 있지만 흔히 알고 있는 것들 중에 아예 중국 본토에서는 맛볼 수 없는 완전 새로 개발된 미국 판 중국요리가 오늘날 미국인들이 손가락으로 꼽는 메뉴 중의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에그롤, 찹 수이, 초장군, 훠춘쿠키 등이 그것이다. 그 중 노동자들의 애환과 함께 제일 먼저 알려진 '찹 수이(Chop Suey)'는 그 기원이 흥미롭다. 몇 가지 유래 중 하나는 뉴욕을 방문한 주미 중국 대사 리홍장을 위한 저녁만찬에 온 미국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즉석에서 이 요리를 개발했는데 대박을 쳤다는 설이다. 사연이야 어쨌든 이일로 미국인들은 중국 음식점을 찾기 시작했고 찹 수이 유행이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를 휩쓸었다. 그 후 2차 대전 때에는 군대 급식으로도 들어갈 정도가 되어 더 이상 미국식이네 아니네 따지지 않는 지경이 되었다. 여기에 루이 암스트롱의 '수이'노래는 그 인기를 극에 달하게 했다. 그러고 보면 찹 수이가 인기리에 자리 잡히게 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찹 수이가 여러 남은 음식을 섞어 볶아 만든다는 '잡쇄(雜碎)'라고 하니 여러 민족의 이민으로 이루어진 미국이 서로 섞여가는 데 좀 더 익숙하고 서로 받아들이는데 더 용이하다는 의미가 아닐는지. 그러니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샐러드 보울'이 아니라 '찹 수이 보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앞으로 '비빔밥 보울'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