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석의 동서남북

수필가, 목사

  • 무자식 상팔자?

    한국에서 여성 한 명이 출산하는 자녀수는 2005년 말 기준으로 1.08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는 OECD 국가는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에 해당합니다. 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현재의 인구를 유지하려면 출산율이 적어도 2명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결국 어떤 특단의 조치와 자녀출산에 대한 획기적인 의식의 변화가 없이는 인구감소 국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어쩌다 우리가 인구감소를 걱정할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 궁극적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여성들의 의식변화에서 주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자녀를 갖는 것에 대한 전통적인 가치관이 편의주의를 좇아서 변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결혼한 여성들 가운데 자녀를 갖는 것을 짐이나 부담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 특별히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자녀 갖기를 꺼린다는 것입니다. '무자식 상팔자'라는 얘기도 있지만 상팔자의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자녀가 없는 인생을 선택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대단히 위험천만한 것으로서 결혼한 사람으로서 자녀를 갖지 않는 것이 인생의 취향이 되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아이를 낳거나 낳지 않는 것이 짜장면이나 짬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듯 취사선택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자녀는 분명 가정의 기업인데 결혼을 하고도 자녀를 갖지 않겠다는 것은 하나님이 가정에 주시는 축복과 관계없이 살아보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네 명 중에 하나가 기독교인이라는 한국에서 저 출산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이기적인 편의를 쫓아서 자녀 갖기를 포기한 여성들마다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가정과 자녀에 대한 참된 가치관을 회복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 "족하리만큼 먹으라"

    얼마 전 주치의를 찾았다가 건강을 지키는데 유익한 식사습관에 대한 몇 가지 상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주치의의 지론은 밥을 주식으로 하는 경우에 밥의 양을 줄이는 것과 식사를 할 때 최대한 천천히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허기가 지면 본의 아니게 식사를 많이 하기도 하고 시간에 쫓기는 가운데 서둘러서 식사를 마쳐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식습관이 성인병을 일으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 하니 마음 중심에 새겨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별히 모임에 나가서 여러 사람이 같이 어울려서 식사를 하다보면 과식할 때가 많습니다. 식욕의 종이 되지 않도록 때로는 금식이나 절식도 하지만 음식을 탐하는 욕구를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적당히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음식을 보면 쉽게 절제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지혜서로 통하는 성경 잠언서는 이렇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너는 꿀을 만나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함으로 토할까 두려우니라" 아무리 산해진미로 가득하다 할지라도 몸에 무리가 되지 않도록 과식하지 말라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충분한 칼로리를 섭취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필요 이상으로 음식물을 섭취할 때 심장에 과중한 짐이 될 수 있습니다. 몸속에 가장 쌓이기 쉬운 것이 당과 콜레스테롤인데 이것들은 없어도 문제이지만 많이 있으면 모든 성인병의 근원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고 필요 이상으로 과식하는 것이야말로 만병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음식을 보면 쉽게 절제하지 못하는 것도 삶을 힘들게 만드는 나쁜 습관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번 건강을 잃게 되면 그 어떤 방법으로도 이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육신의 건강을 보전하기 위해서 과식하는 식습관을 피하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 말 한마디에…

    언어는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사람이 한 살이 되면 다섯 단어를 익히고 두 살 때는 260단어를 배우며 다섯 살 때에는 약 2000단어의 말을 한다고 합니다. 성인이 되었을 때 하루에 쓰는 단어가 남자는 평균 2만 오천이고 여성의 경우는 이보다 더 많은 3만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일 년 동안 사용한 단어로 책을 펴내면 400페이지에 달하는 책 132권을 만들 수 있습니다. 평생 이야기하는 시간만을 따로 모을 때 약 13년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본국의 MBC 방송에서 한글날을 맞이하여 언어에 대한 특별 프로그램을 방영한 일이 있습니다. 햅쌀로 지은 밥을 유리병에 담아 두고 하나의 병에는 '고맙습니다'라는 종이를 붙이고 다른 병에는 '짜증나'라는 종이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4주 동안 '고맙습니다'로 이름 한 병에는 매일 고운 말을 하도록 했고 '짜증나'로 정한 병에는 욕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병들의 뚜껑을 열었더니 신기하게도 '고맙습니다'에서는 하얀 곰팡이가 구수한 냄새를 피우는 반면에 '짜증나'에서는 거무스름한 곰팡이가 심한 악취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일상 사용하는 말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충분히 실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성경의 지혜서 가운데 하나인 잠언에 보면 많은 곳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교훈합니다. 사람들이 일상 사용하는 언의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 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 하느니라"언어는 이처럼 잘 활용할 수 있을 때 능력이 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남을 해치는 무기로 둔갑할 수 있습니다. 3만 단어 가까이 사용하는 하루의 언어 가운데 과연 얼마나 자신과 이웃에게 유익이 되고 있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 'S=X+Y+Z'

    아인슈타인은 특별히 과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사람입니다. 언젠가 아인슈타인의 제자들이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하여 학문에서 성공을 거두셨나요?"그러자 아인슈타인은 칠판에 'S=X+Y+Z'라고 쓴 다음 그들에게 부연 설명을 했습니다. “S는 성공입니다. 그리고 K는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것이고 Y는 지금 현재의 생활을 즐기라는 것이며 Z는 한가한 시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내 성공의 비결입니다.” 우리가 말을 많이 하다보면 필요 없는 말이 나오기 마련이고 그만큼 실수도 많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말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하는 것은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풍요로운 인생을 이루기 위해서는 현재를 최고의 기회로 여기고 즐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앞으로 찾아올 현재의 시간이 즐겁게 되고 만족한 미래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삶에 여유를 찾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여유가 없으면 자신을 돌아보지 못함으로서 삶이 윤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과 같이 성공적인 인생을 이루기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삶에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너무 지치고 피곤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00m 단거리 경주를 하듯이 기진맥진하는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휴식을 찾는 것은 결코 게으름을 피우는 일이 아닙니다. 여름날 나무 아래서 잔디에 누워보고 물의 속삭임을 듣기도 하며 하늘 위를 가로질러 떠다니는 구름을 쳐다보는 것은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 성공이라는 별을 따기 위하여 힘겹게 쫓아다닐 것이 아니라 이제는 여유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단 한 순간도 여유라는 것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세상 가운데 이러한 허상을 쫓아다닐 것이 아니라 내안에 있는 파랑새를 찾아볼 수 있기를 권면합니다.


  • 목사의 학위

    목사는 세상에서 생각하는 직업의 하나로 볼 수 없는 직분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 받아서 그분이 맡겨주신 일을 감당하도록 되어있는 성직(聖職)입니다. 목사가 되기를 원한다고 해서 아무나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또 되어서도 안될 일입니다. 세상에서 보듯이 어떤 조건이나 자격을 갖추었다고 목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전혀 아닌 것 같은 사람이 훌륭한 목회자로 쓰임을 받는가 하면 그와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목회자의 자화상에 걸맞지 않는 현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목사의 학위를 꼽을 수 있는데 목사의 학위가 철저히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고 있습니다. 학위가 목회에 있어서 얼마나 필요한지는 몰라도 학위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적지 않은 목사들이 엉터리 같은 학위라도 받아야 하겠다는 어떤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깊어지다 보면 가짜학위에 대한 유혹까지도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목사에게 학위가 얼마나 중요하기에 하나님과 사람을 속이면서까지 받아야 하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문에 대한 소양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한다면 누구든지 웬만한 학위쯤은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노력을 하고 공부한다고 해서 반드시 목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지 않으셔도 학위는 얼마든지 받을 수 있지만 그분이 부르지 않으면 목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박사보다 못한 목사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봅니다. 세상이 박사를 더 알아준다 해서 스스로 목사보다 박사라는 호칭에 더 관심을 가져서는 안될 일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목사로 부르실 때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기에 부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도 박사학위가 목사보다 더 매력이 있다면 목사의 직분을 반납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 역전의 삶을 기대하며

    연말을 맞이하면서 여기저기서 우울한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언젠가 한 언론기관에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 살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6.3%만이 긍정을 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아무리 일을 해도 잘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노동자가 무려 66%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결국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의욕을 상실한 가운데 삶에 대해서 비관적이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어려운 현실보다도 사람들이 더 심하게 어려움을 타는데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12월이 되면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우울증이 다른 달에 비해서 훨씬 더하게 된다 합니다. 1년 동안에 이루기를 기대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던 현실에 대한 상실감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바라는 것은 많았는데 되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연말을 맞이하면서 망년회를 즐기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한해의 삶을 훌훌 털어내기 원하는 그들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망년회를 통해서 한해를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어두운 사건들을 잊고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힘들었던 지난날을 잊어버리는 것으로 이러한 삶의 흔적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는 어두운 기억을 반전시킬 수 있는 역전의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아무리 죽을 쑨 경기라도 9회 말 역전타 한방으로 얼마든지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경기를 하다보면 상대 투수에게 계속해서 삼진을 당하거나 병살타를 칠 수도 있습니다. 수비를 하는 중에 실책을 범해서 상대편에게 뼈아픈 점수를 주는 일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9회 말 공격 때 통쾌한 역전타 한방이면 이 모두를 일시에 날려버리게 됩니다. 금년 한해 경험할 수 있었던 어떠한 우울한 소식도 이 성탄의 계절에 성탄의 기쁨을 통해서 통쾌하게 역전시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당신이 꼭 필요 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의 아이를 둔 엄마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죽은 남편이 가해자로 몰려 피해보상을 해주느라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엄마는 온종일 빌딩청소며 식당 일까지 해야 했고 집안일은 3학년인 큰 아이가 맡았습니다. 어느 날 엄마는 냄비에 콩을 잔뜩 넣어놓고 집을 나서면서 메모를 남겼습니다. "냄비에 콩을 안쳐 놓았으니 이것을 조려서 저녁 반찬을 해라. 콩이 물러지면 간장을 넣어 간을 맞추면 된단다." 고된 삶에 지친 엄마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생각에 그날 집에 돌아와서 순간적으로 삶을 포기할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 얼굴이라도 볼 생각에 둘러보는데 큰 아이의 머리맡에 쪽지 하나가 있었습니다. 쪽지에 적혀진 내용을 보고 난 엄마는 펑펑 울면서 잠시나마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 것을 후회했습니다. "엄마! 오늘 엄마 말대로 콩이 물러졌을 때 간장을 부었는데 동생이 짜서 못 먹겠다고 투정해서 너무 속상했어요. 내일은 저를 꼭 깨워서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엄마 많이 피곤하지요? 엄마 고생하는 것 저희도 다 알아요. 힘내세요. 사랑해요." 한때 그 누구보다 험하고 힘든 인생을 살았던 미국의 여류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의 격차를 줄여주기 위해 서 있는 누군가가 있기에 힘든 시간을 이겨내곤 합니다." 그 누구에게나 인생길에 좌절과 어려움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면서 물어보면 자신의 참된 가치를 찾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별 볼 일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 각 사람을 천하보다도 귀하고 값어치 있다고 여기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신의 위치를 생각해서라도 가치 있는 삶을 이룰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물론 자신과 이웃에게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사용되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 시련을 극복한 아베베

    1960년 9월 10일 로마올림픽 마라톤 경기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사람들은 로마의 개선문을 통과하는 영광의 우승자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일 먼저 운동장에 들어선 사람을 보고는 어리둥절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름이 아니라 검은 피부에 깡마른 체구 더구나 맨발로 마라톤에 임한 아베베 비킬라 (Abebe Bikila)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선수였기에 주최 측에서 두 번이나 이름을 정정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6.25 참전용사요 에티오피아 황실 근위병인 아베베는 세계 신기록을 세우면서 혜성처럼 등장했습니다. 아프리카 흑인이 따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었고 조국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이탈리아에 대한 멋진 설욕이기도 했습니다. 아베베는 4년 후에 있었던 도쿄올림픽에서도 2시간 12분 11초라는 세계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 후 그에게 큰 시련이 닥치는데 자동차 사고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베베는 이에 절망하지 않고 노르웨이에서 있었던 장애인 올림픽 25Km 휠체어 눈썰매 부분에서 금메달을 따고 10Km 레이스에서는 특별상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찾아오는 시련을 시련으로 보는 사람은 언제나 그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렇지만 시련을 발판 삼아 일어서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적인 삶을 이룰 수 있습니다. 시련이라는 것이 때로는 죽을 만큼 어렵기도 하지만 죽는 것보다 극복하기가 쉬울 수도 있습니다. 이에 아베베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다리는 더는 달릴 수 없지만 나에겐 두 팔이 있다"그는 이와 같이 장애가 되어 있는 다리보다는 아직도 멀쩡한 두 팔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아베베는 시련을 가져다주는 현재의 환경보다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가능성의 미래를 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삶은 환경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하려는 꿈과 용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꿔질 수 있습니다.


  • 목사의 학위

    목사는 세상에서 생각하는 직업의 하나로 볼 수 없는 직분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 받아서 그분이 맡겨주신 일을 감당하도록 되어있는 성직(聖職)입니다. 목사가 되기를 원한다고 해서 아무나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또 되어서도 안될 일입니다. 세상에서 보듯이 어떤 조건이나 자격을 갖추었다고 목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전혀 아닌 것 같은 사람이 훌륭한 목회자로 쓰임을 받는가 하면 그와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목회자의 자화상에 걸맞지 않는 현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목사의 학위를 꼽을 수 있는데 목사의 학위가 철저히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고 있습니다. 학위가 목회에 있어서 얼마나 필요한지는 몰라도 학위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적지 않은 목사들이 엉터리 같은 학위라도 받아야 하겠다는 어떤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깊어지다 보면 가짜학위에 대한 유혹까지도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목사에게 학위가 얼마나 중요하기에 하나님과 사람을 속이면서까지 받아야 하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문에 대한 소양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한다면 누구든지 웬만한 학위쯤은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노력을 하고 공부한다고 해서 반드시 목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지 않으셔도 학위는 얼마든지 받을 수 있지만 그분이 부르지 않으면 목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박사보다 못한 목사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봅니다. 세상이 박사를 더 알아준다 해서 스스로 목사보다 박사라는 호칭에 더 관심을 가져서는 안될 일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목사로 부르실 때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기에 부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도 박사학위가 목사보다 더 매력이 있다면 목사의 직분을 반납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 갠트 여사의 순애보

    얼마 전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었던 한 사연이 지금도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한국전에서 전사한 고 조셉 갠트 일등상사의 미망인인 클라라 갠트 여사가 65년의 기다림을 끝으로 이 땅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녀는 95세를 일기로 양로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생사도 모른 채 살아야했던 이들은 죽음으로 해후를 했습니다. 결혼 2년 만에 전쟁터에서 남편을 잃었지만 재혼하지 않고 기다렸다가 시신으로 돌아온 남편을 만나게 되는 감동적인 러브스토리입니다. 갠트 전 일등상사는 1942년 육군에 입대해서 2차 세계대전 때 남태평양 전선에서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는 1946년 텍사스에서 LA로 오는 기차 안에서 갠트 여사를 처음 만났습니다. 이들은 2년 뒤 결혼을 했지만 달콤한 신혼 생활은 한국전이 발발하면서 깨졌습니다. 전쟁터로 떠난 남편은 1950년 12월 군우리 전투에서 북한군에 포로로 잡혔고 이듬해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그녀에게 보낸 편지에 "꼭 재혼해서 행복하게 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갠트 여사의 대답은 언제나 No 였는데 60여년 만에 돌아온 남편의 관을 보면서 '난 앞으로도 계속해서 갠트의 아내다. 천국에 갈 때까지 늘 그럴 것'이라고 얘기했다 합니다. 그녀는 이처럼 뜨거운 가슴으로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남편이 자신의 곁을 떠난 지 60년이 넘었지만 "그는 좋은 남편이었고 좋은 군인이었다"고 회고하며 변하지 않는 사랑을 노래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남편과 아내가 식은 죽 먹듯 갈라서고 있는 가정들을 생각해볼 때 참으로 귀감이 되는 내용입니다. 갠트 여사를 보면서 옛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조강지처의 모습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기도 합니다. 부부사이에 이루어야 할 사랑이란 이와 같이 죽음으로도 나눌 수 없는 완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